살아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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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을 말하다

2020.03.03
 
 
 
 
 

트럭운전사의 아들

6.25 참전용사이신 아버지는 트럭운전을,

어머니는 시장 노점상을 하시며 옷을 팔았고, 만둣국집도 하셨다.

 

나는 1958년에 태어났다. 고2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셨다. 과묵하셨지만 가벼운 거짓말도 용서 않으시고 엄격하셨던 어머니. 지금도 늘 스스로 성찰하려함은 바로 그 꾸중 덕분이다.

 
 

내 사랑 김남주

동갑나기 아내 김남주.

우린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다.

대학시절 천릿길 떨어져 있어도 군대 가서도 한결같이 마음을 이어준 아내. 11년 연애 끝 결혼에 친구들은 청춘을 잃어버린 불쌍한 순애보라 놀렸지만, 격랑의 삶을 동반해준 아내가 늘 고맙다.

 

우리 사이 딸 하나. 관악에서 당곡중·영락고를 나왔다. 얼굴은 아빠를, 마음 씀씀이는 엄마를 닮았다.

 
 

어머니의 학사모

서울대 경제학과를 입학(77학번)할 때 ‘하늘을 날 것 같다’고 하신 어머니,

민주화의 열정으로 투옥된 아들을 면회오셨을 땐 ‘네가 옳은 일을 한 것을 안다.

단, 손에서 책은 놓지 마라’고 말씀하시며 근심조차 감추셨다.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및 보상관련법이 제정되었지만 보상신청을 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을 하다 돌아가시거나 부상을 당하신 분들에게는 당연히 보상이 가야하지만 멀쩡한 나까지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금을 탄다는 것이 왠지 내키지 않았다.

 

다만 격정으로 산 대학과 청년시절, 참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했다.

7년 만에 학교를 졸업하며 뒤늦게 씌워드린 학사모가 내겐 불효의 상징이다.

 
 

15사단 육군병장

강원도 화천 최전방 15사단 만기제대 했다.

군대체질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부대원과는 잘 어울렸고, 사격도 꽤 했으나 낫질 꼴찌였다.

 

예나 지금이나 군 생활은 긴 시간이다.

그땐 입대가 인생의 단절 같았으나 다시 생각해보니 ‘어울림’을 배우고 ‘건방끼’를 뺄 수 있는 시간이었다.

 
 

YS, DJ가 탐낸 젊은 피

한국노총 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 나라정책연구원 정책기획실장과 금융연구회 등을 거치면서 경제 정책에 대한 역량을 키웠고, 이 과정에서 ‘YS와 DJ가 탐내는 젊은 피’로 언론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3김 시대 극복을 위해 앞장서신 고 제정구 의원을 따라 본격적으로 정치에 입문.

김부겸 의원‧고 노무현 대통령‧이부영 전 의원 등과 함께 정치개혁과 부패정치 청산을 위해 통합민주당을 창당했고, 우여곡절 끝에 그 당이 조순 총재 시절 합당되어 한나라당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 당 소장 개혁파로 활약했으며, 국회의원이 아니었음에도 당 제2정책조정위원장(경제‧예산)에 기용되었다.

2004년 경기도 정무부지사로 발탁되어 보육비 지방정부 지원제도 전국 최초 도입,일자리 창출을 위한 해외 기업 유치 등 많은 행정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출처] 김성식을 말하다|작성자

 

대한민국 1등 국회의원

두 번의 낙선, 세 번째 도전 끝에 관악구민들은 마음을 열어 주셨다.

 

그 성원 덕분에 18대 국회 4년간 원 없이 일한 결과 ‘백봉신사상 베스트 10’ 4년 연속 수상, ‘18대 국회 종합 의정활동 평가 1위’ 등을 달성했고 1등 국회의원이라는 과분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또한 관악주민들과 약속한 관악영어마을 유치, 봉천동 북부주민들의 오랜 숙원인 구암고 신설, 경전철 신림선과 서부선 사업 추진 등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후 당 개혁과 쇄신의 몸부림이 수용되지 않아 결국 한나라당을 뛰쳐나왔고(2011.12.13.) 낡은 정치판을 바꾸기 위해 온 몸 던지는 정치의병을 자임했다.
 

 

[출처] 김성식을 말하다|작성자 김성

민생을 이끈 재선의 정책위 의장

2012년 대선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서 공동본부장을 맡았다.

 

기득권과 대결정치로 얼룩진 낡은 정치의 틀을 바꾸고자 했고 이후 안철수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지금도 생생한 관악구민의 선거혁명 드라마로 수도권에서 제3정당의 ‘유이한’ 당선자가 되었다.

 

이후 국민의당 첫 정책위의장에 선임되어 국회 원 구성을 신속히 마무리하고 누리과정 국가지원 확대 등 막힌 정국을 풀어내는 등 국회 내 협치의 좋은 선례를 남겼다. 또한 여야와 정부가 함께하는 ‘민생경제현안점검회의’를 선도하고 탄핵정국을 책임있게 이끌었으며, 서민부담을 줄이는 전기료누진제 완화, 미세먼지 대책, 청년 단독 가구도 근로장려금 지원, 어르신 기초연금 30만원 인상 등 민생을 주도했다.

 

 

[출처] 김성식을 말하다|작성자 김성식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 위원장으로 미래를 준비하다

국회 4차산업혁명특위 위원장을 맡아 벤처기업협회가 제시한 ‘혁신생태계발전 5개년 계획’ 아젠다를 반영하고, 152건의 정부권고안과 입법개선안을 채택해 ‘벤처인이 뽑은 최고 국회의원’과 벤처기업협회 공로대상을 받았다.

 

의정활동 8년간 경제를 담당하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계속 일하며 저성장‧양극화 등 만성화된 한국 경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20대 국회에서도 18대 국회에 이어 ‘8년 연속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었고, ‘국정감사 국회의원 스코어보드 종합 1위’ 등 ‘여야가 인정하는 베스트 경제통’이란 칭찬도 받았다.

 

 

 
감사와 성찰, 그리고 더 큰 책임으로
 

20대 총선에서 국민들께서 만들어 주신 제3정당 국민의당은 바른정당과 합당하여 바른미래당이 되었다. 정치노선에 대한 합의도 없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긴급하게 치러진 합당에 대해 반대했다. 그 이후 당은 계속해서 분란에 휩싸였고 당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은 무기력했다. 국민과 당원들, 특히 관악구민들께 부끄럽고 송구하다. 바른미래당으로는 더 이상 국민적 대의를 되살릴 수 없어 당을 떠나 무소속이 되었다.(2020.02.05.)

하지만 정치개혁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험난한 길일지라도, 낡은 정치판을 바꾸고 미래세대를 중심으로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넘어 정치적 시대교체를 이루는 일에 힘을 보태려고 한다. 이 길로 소임을 감당하고자 하며 정치적 유불리를 좇아 이리저리 곁눈질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정치가 국민과 함께 꿈을 꿀 수 있도록, 새로운 정치의 싹을 튀우기 위해 앞장서겠다. 김성식 기꺼이 그 도구가 되겠다.

[출처] 김성식을 말하다|작성자 김성식

 

2020.3.3

 

 

 

[김성식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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