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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구 국회의원 김성식] 귀주대첩 승전 1000주년 축제현장에서…반가운 주민들과 동아시아 역사를 바꾼 승리를 되새겼던 시간

2019.10.19

안녕하세요. 김성식의원입니다.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거란군을 물리친 1000년 전 귀주대첩을 기리며 17~19일까지 낙성대공원 일대에서 열린 강감찬 축제에 다녀왔습니다. 관악구 낙성대는 인헌공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 원래 문관이었지만 누란의 위기에 갑옷을 입은 장군의 고향입니다. 축제기간 중 ‘고려시대 도시’로 꾸며진 낙성대 일대에서 반가운 주민들을 많이 만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자부심이 크니 참여도 높습니다. 천년의 역사가 다시 살아나고 그 숨결에 관악의 가을은 더욱 깊어가고 있습니다. 장군이든 평민이든 분장한 주민들의 얼굴이 모처럼 밝네요 :)

 

 

 

 
 
귀주대첩 승전 10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오늘은 관악구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강감찬 장군’을 중심으로 귀주대첩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고자 합니다.

■낙성대는 서울대 옆 또 다른 대학?

우선, 강감찬 장군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낙성대입니다. 혹자는 낙성대를 ‘서울대 인근에 있는 무슨 대학’이 아니냐며 오해하기도 하지만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진 곳’이라는 뜻을 가진 강감찬 장군의 탄생지이자 성장한 곳입니다.

낙성대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보니 하늘에서 별이 떨어져 어느 집 지붕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그 집 며느리가 임신했는데,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 강감찬 장군으로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별이 떨어져 생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출처 : 문화콘텐츠닷컴)

 

 

■동아시아 최강국 거란을 물리친 귀주대첩

강감찬 장군은 948년 관악구 낙성대동 일대에서 태어나 983년에 문과 장원급제를 해 벼슬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0년 전인 1019년 봄 강감찬 장군은 귀주대첩에서 거란의 침입을 시원하게 막아 승전을 울립니다.

귀주대첩 이전부터 고려 조정은 거란과 갈등이 고조됐고, 1차 침입 때는 서희가 담판을 통해 거란을 회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란은 현종 1년인 1010년 강동 6주를 요구하며 2차 침입, 이후 1018년 12월 소배압을 주장으로 10만 대군을 이끌고 3차 침략을 감행했습니다. 고려에서는 강감찬 장군이 군대의 우두머리인 상원수가 되어 군사 20만을 이끌었고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인 흥화진에서 적을 무찔렀습니다. 강감찬 장군을 비롯한 고려군들은 흥화진에서 대패해 도망가는 거란군을 좁은 계곡이 있는 귀주로 유인했고, 거란군을 포위시켜 기습 공격했습니다. 결과적으로 1019년 봄, 거란의 10만 대군 중에서 약 2000명만이 살아 돌아갔습니다. (출처 : 문화재청)

 

 

 

 

 

■1000년 전 귀주대첩 승리에서 우리가 배울 점…

1019년 3월 10일 귀주대첩 승리는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 대첩,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한국의 3대 대첩(大捷) 중 하나로 꼽힙니다. 특히 동북아의 정세 속에서 당시 고려가 처한 시대적 상황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입니다. 귀주대첩에서 거란군은 거의 전멸해 이후 다시는 고려를 넘보지 못했고, 이는 동아시아 역사를 바꿔놓은 대단한 승리를 의미합니다.

거란은 동아시아 최강국이지만 고려와의 귀주 싸움에서 패배함으로써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고, 반면 고려는 동아시아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하며 벽란도 무역항을 통해 고려의 문물이 유럽까지 진출합니다. 아울러 거란과 송나라라는 거대한 두 나라 사이에서 외교도 잘 하며 외부의 위협을 막아냈습니다. 요즘같이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는 고려의 지혜와 당당함을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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