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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최저임금 인상의 역설…저소득층 근로장려금 내년부터 '반토막'

2017.10.31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이 지난 1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다. [사진=연합]
 
[세종=이데일리 박종오 기자] 서울 외곽의 영세 제조 공장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김성실(가상인물)씨는 올해 정부로부터 ‘근로 장려금’ 98만원을 지원받았다. 부인과 딸을 홀로 부양하는 홑벌이 가장인 그가 생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정부가 소득을 지원한 것이다. 

그러나 전씨가 내년에 받는 지원금은 올해의 절반도 못 되는 47만원으로 쪼그라들 전망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라 저소득층이 받는 정부 보조는 되레 대폭 줄어드는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최저임금 받는 홑벌이 지원금 98만→47만원 ‘반토막’
 
 
29일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내년부터 정부의 근로 장려금 지원 대상과 지급액은 올해보다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근로 장려금은 열심히 일해도 벌이가 적어 생활이 어려운 노동자·자영업자 가구가 일정 소득·재산 요건 등을 만족하면 정부가 소득을 보조하는 제도다. 맞벌이 가족의 경우 연 소득이 2500만원, 재산이 1억 4000만원 미만이면 연간 최대 230만원을 정부 재정으로 지원한다. 일하기 어려운 극빈층은 정부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지정해 생계비를 주지만, 그다음으로 가난하고 노동 능력이 있는 계층은 일할수록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이다. 

문제는 이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이 올해 시간당 6470원에서 내년 7530원으로 16.4%나 오르면서 기존 수급자 상당수가 지원액이 대폭 줄거나 수급 자격을 잃게 돼서다. 


◇근로장려금, 소득 늘수록 지원금↓
 
 
이는 소득이 늘면 정부 지원은 거꾸로 줄어드는 근로 장려금의 계산 방법 때문이다. 

현재 근로 장려금은 가구 소득별로 3개 구간을 구분해 지급액을 달리하고 있다. 홑벌이 가구의 경우 연간 소득이 900만원 미만이면 소득이 높아질수록 지원액도 증가한다(점증 구간). 반면 가구 소득이 900만~1200만원 사이이면 연 185만원을 정액으로 지급한다(평탄 구간). 이보다 버는 돈이 많아지면 정부 지원액은 감소하다가 0원이 된다(점감 구간).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해서 버는 소득이 높아질수록 근로 장려금도 더 주지만, 일정 소득을 넘기면 오히려 지급액이 줄도록 제도를 설계했다”며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너무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오르자 근로장려금 ‘뚝’…제도 빛바래
 
 
이에 따라 내년에 최저임금이 예정대로 오르면 저소득 노동자 3명 중 1명은 근로 장려금을 올해보다 덜 받거나 아예 지원이 끊기는 문제가 생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전체 근로 장려금 지급 가구의 37.3%(51만 4871가구)는 소득이 늘수록 수급액이 주는 ‘점감 구간’에 속해 있다. 점증 구간은 46.2%(63만 6588가구), 평탄 구간은 16.5%(22만 7494가구)다. 전체 수급 가구의 최소 3분의 1 이상이 내년에 정부 지원금이 줄거나 더는 지원을 못 받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올해 가구주가 최저임금을 받는 홑벌이 가구는 연간 소득이 1623만원(월 209시간 근로 기준, 유급휴일 및 주휴수당 포함)에 불과해 근로 장려금 98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내년에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소득이 연 1888만원으로 늘면서 장려금 수급액이 47만원으로 대폭 줄어든다. 

열심히 일할수록 정부가 많은 혜택을 주는 근로 장려금의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얘기다. 


◇정부 보완 방안 없어

정부가 마련한 보완 방안은 현재로서는 없는 상태다. 기재부는 올해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내년에 근로 장려금 지급액을 지금보다 10% 많은 최대 250만원으로 높일 계획이다. 다만 지급액 구간을 나누는 소득 기준은 그대로 둔다.

기재부 세제실 관계자는 “근로 장려금은 애초 중위소득(전체 가구를 소득 순서대로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 소득)의 50% 이하 가구까지만 혜택을 보도록 설계한 것으로 무작정 지원을 확대할 수 없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내년에 가구 중위소득이 많이 높아지는 등 제도 변경 필요성이 생기면 그때 기준 개선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文정부, 근로장려금 홀대…최저임금 의존↑
 
 
전문가들은 정부의 저소득층 지원 제도가 정교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근로 장려금 대신 최저임금 중심의 소득 보전 구조는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해서다. 

최저임금과 근로 장려금 제도는 모두 저소득 노동자의 소득을 높이는 것이 목적인 상호 보완적인 정책 수단이다. 저소득층에게 주는 돈을 민간 기업과 정부 중 누가 부담하느냐가 중요한 차이다. 

주류 경제학계는 근로 장려금을 더 선호한다.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일자리 감소를 초래할 수 있지만, 근로 장려금은 이런 부작용 없이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장점이 있어서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저소득층 소득 지원 제도는 문재인 대통령의 ‘최저임금 2020년 1만원 달성’ 공약을 의식해 최저임금 인상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이에 따른 부작용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최저임금 보조금 3兆, 중산층 이상이 혜택

실제로 최저임금에 초점을 맞춘 소득 지원 정책은 막대한 비용의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 정부가 내년 예산에 반영한 3조원 규모 ‘일자리 안정 자금’이 대표적이다. 

정부는 내년도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일자리 감소 우려가 커지자 영세 자영업자·중소기업에 고용 보조금 2조 9700억원을 1년간 한시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120% 이하인 노동자를 채용해 고용보험에 들고 1개월 이상 고용을 유지하는 30명 미만 고용 사업체에 노동자 1명당 월 13만원씩을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정부 재정을 의도와 다르게 중산층 이상 계층 지원에 쓰는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최저임금 보전의 혜택이 중·고소득 가구에게 주로 돌아갈 수 있어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발표한 ‘최저임금과 사회안전망:빈곤정책수단으로서의 한계’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최저임금 미만 임금을 받는 노동자 중 실제 빈곤 가구(중위소득의 50% 미만)에 속하는 사람은 전체의 30.5%에 불과했다. 나머지 69.5%는 노동자 개인이 최저임금을 받더라도 가족 전체로는 중산층 이상의 소득을 올렸다. 

정부의 최저임금 보조금이 결과적으로 중산층 이상 가구 소득으로 흘러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이다. 같은 3조원을 근로 장려금 재원으로 쓸 경우 저소득 계층을 집중 지원해 소득 재분배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것과 대조적이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 늦추고 근로장려금 확대해야”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제도와 근로 장려금 제도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저임금 인상 속도를 다소 늦추는 대신 근로 장려금을 보완 수단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도적 절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김대일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저임금을 즉흥적으로 너무 많이 올리다 보니 정작 저소득층 근로 장려를 위한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며 “정부 재원을 최저임금 제도와 근로 장려금 제도의 균형을 맞추는 데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근로 빈곤 가구의 소득을 정부와 시장 중 누가 부담하느냐는 나라마다 정책 방향이 조금씩 다른 철학적 문제”라며 “우리나라의 경우 저임금 고용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상위에 이를 만큼 매우 높기 때문에 1조원 정도의 근로 장려금 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 연구위원은 “근로 장려금은 저소득 가구에 최적화한 제도이므로 그 보완적 역할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정부 안에서도 최저임금과 근로 장려금 사이 적절한 균형을 찾기 위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최저임금 지원, 내년 예산 심의 최대 쟁점으로

정부의 최저임금 지원은 당장 국회의 내년도 예산안 심의에서 핵심 이슈로 부상할 전망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공무원 충원 문제를 두고 말이 많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정부가 책정한 내년 최저임금 지원 예산 3조원이 가장 큰 정치적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김성식 국민의당 의원은 “최저임금은 시장과 고용 상황에 따라 합리적 수준에서 결정하고, 일하는 저소득 근로자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뛰어난 근로 장려금을 통해 지원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보조금 3조원을 근로 장려금 확대, 사회보험 가입 지원 예산. 고용보험 강화 등을 위해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수 미국 인디애나 퍼듀대 경제학과 교수는 자신의 책 <99%를 위한 경제학>에서 “온건한 수준의 최저임금제를 지지하는 것은 다소 비경제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최저임금제는 우리 사회가 가장 밑바닥에 속한 노동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합의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제도를 한국의 저임금 노동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로 간주하기보다, 노동을 존중하는 우리 사회의 가치 척도로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미다.

[박종오 (pjo22@edaily.co.kr)]
 
 
(기사출처 :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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