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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무상 복지, 부자 복지

2011.02.16

[장하준 칼럼] 무상 복지, 부자 복지
                                                                                                - 2011년 02월 15일


 미국이나 영국에서 상속세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이를 '사망세(death tax)'라고 부른다. 상속세라고 하면 재산을 물려받아 '불로소득'을 한 자식에게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자식에게 재산을 남겨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임을 강조하는 입장에서도 상속세를 없애자고 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를 사망세라고 부르면 초점이 부모에게로 옮겨가서 죽는 것도 억울한데 거기에 세금까지 매긴다는 공격을 통해 그 세금의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렇게 논쟁을 할 때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가 논쟁의 승패를 가르는 데 굉장히 중요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논쟁의 상대들이 서로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충분히 타협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들이 극단적인 대립관계에 있는 것으로 잘못 인식되기가 쉽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복지문제가 좋은 예이다.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의 확대를 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상 복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무상(無償) 복지란 있을 수 없다. '무상' 교육이나 '무상' 진료를 받을 때 당장 돈을 내지는 않지만 결국은 세금으로 그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공구'(공동 구매)이지 '공짜'가 아니다. 소득세나 재산세를 안 내는 가난한 사람한테는 공짜가 아니냐고 생각하겠지만 그들도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는 내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

반대편도 마찬가지이다. 그들 중 일부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지 혜택을 주면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부자들까지 덕을 보는 '부자(富者) 복지'가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재산세와 같이 부자들만 주로 내는 세금이 있고 소득세같이 돈을 많이 벌수록 비율적으로 많이 내야 하는 누진세가 있는 상황에서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은 복지 혜택을 받는다면 그들은 같은 상품에 대해 몇 배 돈을 더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편적 복지를 통해 부자들이 혜택 보는 것이 그렇게 못마땅하면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면 된다.

이렇게 볼 때 한쪽은 누구나 돈을 내게 되는데 마치 가난한 사람은 돈 하나도 안 내고 혜택을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호도하고, 다른 쪽은 혜택은 똑같이 보고 돈은 더 내야 하는 부자들이 더 크게 덕을 보는 것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개념적으로는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가 나누어지지만 누구도 완전한 선별(選別)이나 완전한 보편성을 주장하지 않는다. 아무리 선별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공공 초등교육에 반대하지 않으며, 아무리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사람도 성형수술비를 공공 의료를 통해 제공하자고 주장하지 않는다. 재원 조달의 문제에 있어서도 부자 편을 드는 사람들도 재산세와 누진세의 필요성을 인정하니 부자들이 조금이라도 높은 세금부담을 져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 편을 드는 사람들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철폐하자고 주장하지 않으니 가난한 사람도 조금은 세금을 내야 한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원론적으로 보편적 복지가 맞느냐 아니냐를 이야기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타협을 하는 것이다. 어떤 질병에 대해 의료비 중 얼마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가, 어떤 수준까지의 교육이 세금을 통해 제공되어야 하는가, 노후연금은 몇 살부터 얼마나 받아야 하는가, 실업보험 급여가 실직 전 보수에 연동되어야 하는가 등 구체적인 문제가 토론되어야 한다. 세원(稅源) 조달문제도 현재 우리 소득 수준에 비해 낮은 담세율(擔稅率)을 얼마나 올려야 하는가, 직접세와 간접세의 비율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어떤 세금을 얼마나 올리고 어떤 것을 얼마나 내릴 것인가, 복지 지출을 늘리는 대신 기존 정부 지출 중에 줄일 것은 없는가 등등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 한다.

물론 보편적 복지, 선별적 복지와 같은 기본적인 개념 논쟁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쟁은 불필요하게 대립만 악화시키기 쉽다. 이제 그런 논쟁은 일단 접어두고 구체적인 논쟁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의 차이, 메울 수 없는 이념의 간극으로 보이던 것들 중의 많은 부분이 충분히 타협이 가능한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문제들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그러면서 많은 분야에서 생산적인 타협이 나올 것이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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